회사단체선물 고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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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리얼리즘의 창시자’라고 불릴 정도로 일상의 애환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소설가 장류진. 그는 자신의 소설에 스스로가 ‘딸기우유에 딸기가 들어 있는 만큼’ 들어 있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딸기우유의 딸기 함량은 0퍼센트다. 하도 리얼하다 보니 으레 실제 겪은 이야기를 썼겠거니 생각하지만 아니란 뜻이다.
그럼 지난달 출간한 그의 첫 에세이집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에 반영된 그의 함량은 어느 정도일까. 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난 장 작가에게 딸기음료에 빗대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생딸기라테예요. 딸기 알갱이가 씹히거든요. 하지만 딸기 그 자체는 아닌?”
그의 말대로 이 책은 여행 에세이다. 하지만 장편소설 같은 구성과 기법으로 쓰였다. 2023년 7월 오랜 친구 예진과 대학시절 함께 교환학생으로 머물렀던 핀란드로 여행을 떠난 열흘간의 이야기다. 장편소설 쓸 때보다 오래 붙들며 썼고, 그가 쓴 어떤 소설보다 길게 썼다.
“사실 에세이를 출간하자는 제안을 그동안 많이 받았지만, 계속 거절했어요. 실존하는 인물인 내 이야기가 책 속에서 고정돼 버리는 게 싫고 두려웠던 것 같아요.”
2018년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등단한 이후 세 권의 책을 내고 작가이자 한 사람으로서 성숙되는 과정을 거치며 “한 번쯤은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행기에 도전했지만 고민이 길었다. 그는 “하얀 화면에 커서만 깜빡거리고 있을 때의 공포감이 컸다”며 “장르에 구애받지 말고 내가 제일 잘 아는 두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설적인 방법으로 풀어보자고 생각했더니 드디어 글이 풀렸다”고 말했다.
이 책은 단순한 도시의 변천사가 아니다. 민속학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시대를 살아낸 '삶의 풍속'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달동네의 억척스러운 삶, 연탄 아궁이 앞에서 벌어지던 일상의 고단함, 아파트 옥상에서 치러진 장례식과 결혼식, 주말마다 반복되던 손 없는 날 이사, 밀가루 범벅이 되던 거친 졸업식까지. 유승훈이 포착한 서울의 풍경은 단지 장소가 아니라, 시대의 상징이자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서울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성장통'을 겪는 한 시대의 주인공임을 알게 된다. 성장과 개발의 이면에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몰려든 판자촌, 콩나물처럼 빽빽이 모인 교실, 강남 복부인의 투기 열풍, 자동차 고사를 지내던 마이카 시대, 버스 안내양들의 고된 하루, 부동산 특혜와 불평등, 여성의 자립을 위한 점집 찾기까지. '서울 시대'라는 이름의 이야기는 곧 1960~1990년대 한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한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왕십리 똥파리요, 강남 복부인이요, 손 없는 날이요, 자동차 고사요, 소개팅이요, read more 마담뚜 등등 하찮은 것들"이라고. 하지만 바로 그런 '하찮은' 것들이야말로 한 시대를 가장 잘 말해주는 기록이다. 역사책에 남지 않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동차 고사는 근대화의 상징인 자동차와 전통적 고사가 만나 형성한 독특한 풍속이고, 복부인의 부동산 투기 행렬은 경제 성장 이면의 욕망과 불안을 대변한다. 손 없는 날에 몰려 다니던 이삿짐 행렬은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삶의 역정을, 달동네와 판자촌은 도시의 성장 그늘에 드리운 가난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울 시대>는 그 시대를 단순히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 않고, 그 안의 인간 군상과 고통, 희망, 분투, 일상의 치열함을 조명한다.
책에 실린 115장의 사진 자료는 글로만 읽던 서울 시대를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달동네의 구불구불한 골목, 아궁이 앞의 주부, 연탄 가는 모습, 만원 버스와 콩나물 교실, 강남 복부인의 부동산 투기 현장, 손 없는 날 이사 풍경까지. 이 사진들은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 저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한다.
특히 '서울 풍속 지도'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살아본 이들에게는 추억과 회상의 안내서가 되고, 서울이 낯선 이들에게는 시대의 맥락을 짚어주는 길잡이가 된다.
<서울 시대>는 과거 서울의 풍속을 통해 오늘의 서울을 다시 보게 만든다. 지금 서울은 누군가의 꿈을 이루는 공간이자, 또 다른 누군가의 고단한 삶터다. 과거 달동네가 사라진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비싼 집값과 좁은 지하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옛날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서울의 성장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서울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는 저자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가 잊어버렸던 질문이 새삼 떠오른다. "과연 서울의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서울을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역사다. 저자는 시대의 뒷면에 있던 작은 목소리들, 자취 없이 사라질 뻔한 일상의 풍속들을 기록함으로써,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서울의 역사, 대한민국의 성장사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특히 우리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가 어떤 서울을 살았는지를 알고 싶은 젊은 세대에게도 이 책은 귀한 '삶의 증언'이 될 것이다.
첫 에세이가 소설적인 건 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두 꿈꾸지만 실현되긴 어려운, 그래서 더없이 소설적인 ‘15주년 리유니언 여행’을 다뤄서이기도 하다. 친구 예진은 아이 둘을 양가에 맡기고 아껴둔 육아휴직을 그와의 여행을 위해 쓴다. 사우나와 영화 ‘카모메 식당’을 좋아하고 대화 방식에 MBTI까지 똑같은 친구와의 여행에서 작가는 자신의 취향, 꿈, 사랑, 삶을 살아낼 힘을 다시 발견한다. 그는 “글을 중반까지 썼을 때 이 이야기가 ‘여행’이 아니라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살아보니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말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친구는 그의 ‘뒷배’이자 ‘비빌 언덕’이다. 여행 내내 ‘작가인 내 친구’를 자랑스러워하는 예진, 그가 늘 ‘행복한 버전의 장류진’이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겹친다. 다양한 핀란드 문화를 엿볼 수 있단 점, ‘인간 장류진’의 솔직한 면모를 생딸기라테처럼 진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책을 읽다 보면 자꾸 그리워지는 친구들이 생긴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장인’이 그린 낭만적 우정 덕분일 테다. 그는 “책을 읽고 친구에게 연락했다거나 리유니언 여행 날짜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기쁘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이라 처음엔 힘들었지만, 써놓고 보니 너무 좋고 뿌듯해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지만 결국 ‘좋은 이야기’란 점에서 같은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신다면 좋겠어요.”